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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미제, 실제 사건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사건, 김보은 김진관 사건

by 로우컴퍼니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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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피해자 김보은 사건

 

김보은 김진관 정당방위 성폭행 피해자 사건
김보은양

 

1992년 1월 17일 충북 충주에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피해자의 이름은 김영오이며 범인은 또 다른 피해자인 그의 의붓딸 김보은(당시 21세)과 그녀의 남자친구 김진관(당시 22세)이었다 범인이 피해자?? 제가 범인인 김보은을 또 다른 피해자라고 지칭한 이유는 김보은이 의붓아버지인 김영오에 의해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1. 성폭행 가해자 김영오

 

김보은은 7살 때 어머니가 김영오와 재혼을 하여 김영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김영오는 검찰 공무원이었는데 뇌물로 축척해 온 재산이 많아 김보은과 가족들은 나름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다

 

그러나 김보은이 9살이 되던 때 김영오의 악마 같은 범행이 시작되었다 김영오가 김보은을 수시로 성폭행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당시 사회분위기상 검찰이라는 존재는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김영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건의 피의자를 집으로 불러 직접 폭행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심리적으로 통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와 김보은을 자신의 테두리에 가두어 도망갈 수 없도록..

 

또한 어머니와 김보은을 한자리에서 성폭행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며 조롱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보은과 어머니는 도망갈 생각 조차 하지 못한 채 지옥 같은 시간을 12년이나 버텨야 했다

 

 

 

2. 피해자 김보은과 남자친구 김진관

 

성인이 된 김보은은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학교가 집과 멀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의붓아버지 김영오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에 잠시 기뻤지만 김영오의 성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김영오는 김보은에게 토요일은 무조건 집으로 오라고 협박하였고 그때마다 또다시 성폭행을 하였다 

 

김보은에게는 김진관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둘은 평일에는 학교 수업 때문에 자주 만날 수가 없어 주말 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김진관은 김보은이 주말만 되면 집으로 가는 것과, 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둘 은 이런 문제로 인하여 자주 다투었고..  결국 김보은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김진관에게 털어놓았다

 

김진관은 심한 충격을 받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진관은 김영오를 만나 김보은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김영오는 되레 김진관에게 헤어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하였다 결국 김보은과 김진관은 이런 악마를 살해하기로 결심하였다

 

 

 

3. 사건 발생(악마를 처단하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김영오를 살해한 후에 집에 강도가 든 것처럼 위장하기로 계획하였다 사건당일 1992년 1월 17일 새벽 1시 30분.. 김진관이 약속 시간에 맞춰 김보은의 집에 도착하자 김보은은 조용히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이때 김영오는 술에 취해 자기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김진관은 김영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무릎으로 김영오의 팔을 눌렀고 보은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가지고 온 식칼로 김영오의 심장을 찔렀다 악마를 처단한 것이었을까? 김영오는 이 한방에 바로 사망하게 되었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강도가 든 것처럼 방안을 지저분하게 만들었고 실제로 현금도 가지고가 밖에서 태웠다 또 김보은이 강도에게 묶인 것처럼 위장도 하였다 김진관은 바로 자리를 떴고 김보은은 강도가 들었다며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사건현장을 보던 경찰은 너무도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김보은이 미심쩍었고 강도가 아버지만 살해하고 김보은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김보은이 묶여 있던 것 빼고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경찰관 한 명이 김보은에게 "병원에서 너의 아버지를 봤는데 살아계시더라'라고 슬쩍 떠보았다

그 말을 들은 김보은은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안돼"라고 말을 하였고 결국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하게 되었다

 

 

 

김보은 김진관 정당방위 사건
김보은과 김진관의 정당방위를 요구하는 대책위

 

4. 사건 이후

 

보통 공법들은 서로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며 죄를 미루는데 이들은 재판 중에 애틋한 모습을 보였다

 

김진관 :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한 보은이가 무참히 짓밟힌 사실을 알고서도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보은이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보은 이를 살린 겁니다"

 

김보은 : "구속된 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난 20년 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더 이상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평생 당해온 억울함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는데 이제라도 모두에게 말할 수 있어서 한을 풀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관이는 저 때문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모든 죄는 저에게 있으니 진관이는 선처해 주십시오"

 

이 사건은 초기에 아버지를 살해한 추악한 범행이었다 그러나 김진관의 아버지가 여러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를 다니며 사건의 본질을 알림으로써 빠르게 퍼져나갔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어졌고 이들을 구명하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당시 22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변호를 자처하였고 언론 또한 김보은과 김진관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살인의 죄를 범한 것 치고는 나름 약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김보은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김진관은 징역 5년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김진관도 2년의 수감생활을 하고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게 되었다 김보은은 집행유예로 풀려나자마자 김진관의 부모님을 찾아가 울면서 자신이 잘 못했다며 사죄하였는데 김진관의 아버지는 김보은에게 괴로워하지 말고 앞으로 열심히 살라며 오히려 위로를 해 주었다고 한다 현재 이 두 분은 개명을 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김부남 사건이 있었다 김부남 사건은 어릴 때 자신을 성폭행한 송백권을 살해한 사건인데 이 두 사건으로 당시 아동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성폭력 특별법이 새롭게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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