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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미제, 실제 사건

한국 최초의 토막 살인 사건, 춘천호 토막 살인 사건

by 로우컴퍼니 202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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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호

 

 

1965년 5월 16일 강원도 춘천군(현 춘천시) 춘천호에서 머리가 없는 나체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토막살인 사건으로 불린다 이후 이 사건을 모방하듯이 토막 살인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게 되었다

 

 

 

1. 사건 발생

 

5월 16일 당시 춘천호 주변에서 나물을 캐고 있던 동네 여성들에 의하여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시신은 머리가 없었으며 나체의 상태로 물속에서 꼿꼿이 서있는 상태였다 누군가 살해하고 양 발목에 큰 돌을 묶어 호수에 던진 것이다 경찰이 도착하여 시신을 건져 상태를 확인하였는데.. 양팔은 묶여있었고 배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으며 음부가 도려내져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옷에 싸인 머리가 발견되었는데 얼굴은 귀와 코가 잘린 채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DNA나 과학수사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사가 미궁에 빠질 때쯤.. 경찰서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이 여성은 자신의 여동생이 며칠 전부터 소식이 없어 신문의 사건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 그녀는 얼마 전 동생에게 옷을 사주었는데 당시 시신의 머리를 감싸던 이 옷을 보고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피해자는 당시 술집에서 일하던 32살의 이강순 씨였다

 

 

 

2. 수사 과정

 

당시 경찰은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을 보고 당연히 치정이나 원한 관계일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하였다 그 용의자는 현 남편 A 씨와 전 남편 B 씨!! 당시 시대가 시대인지라 A 씨와 B 씨는 경찰서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시 피해자 이 씨(이강순)를 만났다는 최 씨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65년 1월 27일 그날은 눈이 내리며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빈 지게를 지고 가던 최 씨는 많은 짐을 들고 가는 이 씨를 만나게 되었고, 이 씨는 남편이 다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 이사를 하는 중이라 하였다 이를 딱하게 생각한 최 씨는 이 씨를 도와주었는데 둘은 길을 가다가 어느 주막에서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씨의 주변인을 탐문하던 다른 경찰들은 이 씨가  그 주막에 갔다는 말을, 이 씨의 이웃인 김 씨에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어떻게 알았을까?) 결국 수사는 주막으로 집중되었고 경찰은 주막 주인 임동익을 체포하였다

 

 

 

3. 잔인한 살인범 임동익

 

당시 45세인 임동익은 처음에는 살인을 부인하였으나 경찰의 집요한 추궁 끝에 결국 자백을 하였다 임동익은 주막을 운영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사건 당일은 가족들이 친척 결혼식에 갔기 때문에 혼자 있었고.. 그러던 중 몹시 추운 날씨에  피해자 이 씨가 추위를 잠시 피하려고 오게 되자 둘은 임동익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잠을 자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잠자리를 허락하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임동익은 추악한 욕구를 가지고 이 씨를 범하려 하였다 이 씨는 강하게 저항하였지만 힘에서 임동익을 이길 수 없었고..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와 임동익에게 위협을 하기도 하였지만 금방 제압을 당하였다 임동익은 이 씨가 신고를 할 까봐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씨를 춘천호로 데려갔다

 

이 씨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나 임동익은 결국 이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하였다 당시 춘천호는 얼어 있었는데 임동익은 가지고 간 낫으로 얼음을 깨고 이 씨의 발에 큰 돌을 묶어 호수에 유기하였다 그러나 봄이 되면서 얼음이 녹아 이 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었다

 

 

 

4. 사건 결과

 

임동익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 씨의 이삿짐을 장에 전부 내다 팔았으며 이사까지 갔다 임동익이 언제 체포가 되었는지 정확한 날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사형이 선고되었고 1968년 4월 23일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 이후 1967년도에만 토막 살인 사건이 3건이나 발생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런 범죄가 없었기 때문에 사건을 접한 경찰도 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래된 사건이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임동익은 북한 간첩으로 활동을 하다가 한국군에 입대하여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살인에 대한 거리낌이 없이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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